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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개인의 의견\個人の意見

인간실격

by 맛세이 2023. 8. 15.

 최근 우연히 '경계곡(界隈曲)'이라는 독특한 장르의 음악을 알게 되었다. 특정 아티스트의 팬덤을 지칭하는 '경계'에서 파생된 이 이름은, 정작 그 아티스트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꺼려하여 팬들 스스로 주어를 생략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모두를 매료시킬 재능을 가졌음에도 세상의 관심으로부터 도망치고자 했던 한 천재의 모습은,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인간실격』 속 주인공의 초상과 겹쳐 보인다.

 

 그의 수기는 자신감 결여와 자기변명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모든 행동에 장황한 변명을 덧붙이면서도, 정작 중요한 정보는 모호하게 얼버무린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특히 인간관계에서 두드러진다. 생애 처음 사랑을 느꼈던 츠네코와의 관계에서도 사랑의 감정 묘사는 희미하며, 그녀의 죽음 앞에서는 끝내 상대를 '여자'라 칭하며 타인에 대한 깊은 무관심과 거리감을 드러낸다. 이러한 거리두기는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되어, 무기력의 정점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를 '식객'이라 칭하기에 이른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가장 큰 비극은 평범한 사회생활조차 불가능한 사회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예민한 감수성이었을지 모른다. 그는 타인에게 상처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익살'을 연기하면서, 그런 연기를 멈출 수 없는 자신에게 절망한다. 하지만 독자의 시선에서 그의 '익살'은 어릿광대의 몸짓이 아닌, 파국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생존 전략, 즉 '최선의 행동'으로 읽힌다. 바로 이 시선의 불일치가 독자로 하여금 그의 내면으로 깊이 파고들게 만들고, 끝내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드는 강력한 몰입의 장치가 된다.

 

주인공과 동일시된 독자가 마주하는 후반부의 서사는 처참하다. 이전의 삶도 충분히 비참했지만, 거기에는 '익살'이라는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선택하고 호리키와 어울리는 등, 그의 능동적인 선택이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그러나 약물 중독과 정신병원 감금에 이르는 후반부의 서사는, 타인에 의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수동적인 파멸의 기록이다. 안정감을 찾으려던 최소한의 희망마저 꺾인 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이 모든 비극을 겪은 그는, 고작 스물일곱 살의 청년이었다.

 

이 지점에서 독자는 잠시 숨을 고르게 된다. 그의 처절한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무의식적으로 그의 나이를 마흔 이상으로 상상하게 된다. 그렇기에 그가 고작 스물일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은, 깊은 몰입에서 순간적으로 깨어나는 '킥(kick)'으로 작용한다. 이 충격을 기점으로 독자는 그의 수기에서 벗어나, 소설의 마지막처럼 제3자의 시선으로 그의 삶을 관망하게 된다. 마치 긴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인간실격』이라는 제목의 무게는 책장을 넘길수록 무겁게 다가온다. 처음에는 세상과의 불화에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자기혐오 정도로 여겨졌던 제목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섬뜩한 의미를 지닌다. 소설은 끝없이 추락하는 한 인간의 기록을 통해, '인간의 자격'이란 얼마나 처절한 과정을 거쳐 상실되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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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우연히 좋아하는 노래의 장르(?)를 찾았는데, 경계곡(界隈曲)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왜 경계곡인가 하니, 일본에서 경계(界隈)는 특정인 혹은 작품에 속해있는 것을 통칭하는데, 경계곡의 시초인 ___가 작곡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을 ___경계라고 불러야 하지만 ___는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여 팬덤은 이름을 생략한 경계로 부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고유명사로 굳혀졌다고 한다. 이렇듯 ___는 모두를 홀리게 하는 매력이 있었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을 두려워해, 결국 자신의 모든 작품을 내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이름을 표시하지 않는 것도 내가 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 이다) 이렇게 저주받은 인재를 보다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 떠오른다.

 

 주인공의 회상과 같이 진행되는 이야기 중에서 그는 항상 자신감이 결여되어있다. 모든 행동에 사족을 붙여가며 변명을 장황하게 늘여뜨리지만, 정작 중요할지도 모르는 정보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 특히 이 경향은 인간관계에서 강하게 드러난다. 처음 '사랑'이란 감정을 느꼈던 츠네코에게도 감정에 대한 묘사, 회화등이 거의 표현되지 않는다. 결국 그녀가 죽을 때, 주인공은 그녀를 '여자'라 칭하며 다른 사람에 얼마나 무관심한지 느껴진다. 하지만 이러한 묘사는 주인공 자신에게도 적용된다. 기소유예를 받고 외출금지를 당했을 때, 자기 자신을 관찰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함에 빠졌을 때에는, 자신을 '식객'이라 표현하기도 하였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가장 끔찍한 저주는 범인(凡人)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회능력이 아닌, 그에 반하는 능력일 것이다. 주인공은 '우스운 행동'을 연기할 때마다 괴로워한다. 이러한 행동을 함으로서 더욱 자신을 옥죄게 하는 걸 알면서 '우스운 행동'을 연기하는 것을 멈출 수 없는 것에 대해 죽을만큼 괴로워한다. 하지만 주인공의 기준이 아닌, 독자인 '나'의 기준으로 보게 된다면 그 '우스운 행동'은 절대 우습지 않고 오히려 그 상황의 '최선의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와 주인공의 의견차이가 더욱 주인공의 행동을 흥미롭고 집중하게 만든다. 결국 '나' 또한 주인공의 생각에 공감하여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이 되어버린 내가 읽게 되는 이후의 이야기는 매우 비참하다. 물론 이전 이야기는 비참하지 않느냐고 물어본다고 하면 충분히 비참하지만, 그나마 이는 모두 능동적으로 행동한 결과인 것이다. '우스운 행동'도 내가 멋대로 지정한 방어기제이며, 호리키와의 관계도 나의 행동으로 만든 것이다. 하지만 이제 타인에 의한 행동이 나의 삶을 망친 것이다. 어느정도 안정감을 찾아가던 내 삶은 그대로 무너진다. 중독자가 된 나는 더이상 돌아갈 기회조차 없다. 밑바닥에도 바닥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더더욱 무너져가 결국 폐인이 된 채 소설이 마무리된다. 그리고 그는 아직 27살이었다. 

 

 후반부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도저히 20대의 청년의 이야기로 보이지 않는다. 도중에 주인공의 여자중 한명이 40대로밖에 안보인다고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다른 사람들도 전혀 앞날이 창창한 청년의 대접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도 그에 맞는 인생을 산다. 이렇게 나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주인공의 나이를 정해버린 것이다. 이는 내가 주인공에 몰입된 상태를 벗어나게 해준 킥(kick)이었다. 그리고 이후 주인공의 수기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으로 돌아온다. 마치 꿈에서 깬 듯한 기분을 가진다.

 

"인간실격"이라는 단어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나에게 다가오는 느낌이다. 처음에는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여 두려워하는 사람이 사회에 녹아들지 못하여 자신을 자책하는, 비교적 가벼운 의미로 느껴졌으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무서워진다. '인간 자격은 쉽게 잃는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끝을 알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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